언제나처럼 가볍게 볼 수 있는 드라마를 찾고 있었는데,
문득 넷플릭스가 툭 던져주기에 보기 시작한 드라마가 있다.
하이틴 드라마다.
러닝타임이 20분 정도로 쉽게 쓱쓱 부담 없이 볼 수 있다.
그런데 생각보다 단순하지만은 않다.
여주인공은 인도계 미국인이다.
이름은 데비.
당연히, 공부를 잘하는 우등생이지만 마음은 딴 데 가 있다.
유명해지기. 남자친구 만들기.
한 마디로 잘 나가는 학생이고 싶어 한다.
얼마 전 아빠를 잃었으며, 사고로 다리를 다쳐 휠체어를 타고 다녔다.
그런데 다시는 쓸 수 없을 것 같던 다리를 낫게 한 남자가 있었다.
바로 이 남자.
이름은 팩스턴.
일본계 혼열이다.
(사족: 이 배우는 91년생이며 이름은 대런 바넷(darren barnet).
이 배우를 섭외하고자 주인공 설정을 일본계 혼열로 바꿨다고 한다.)
그래서 드라마 속 인물 이름이 '팩스턴 홀요시다'다.)
데비는 엄마와 장 보고 나오던 길 팩시턴의 얼굴을 보고자 휠체어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 자리로 다리를 다시 쓸 수 있게 됐다.
팩스턴은 수영선수다.
데비보다 한 학년 선배지만 잘 생기고 몸 좋은 대신 머리가 조금 달려 데비와 같은 수업을 듣게 된다.
뭐랄까 되게 무심한데 또 은근히 자상하다.
데비 옆엔 팩스턴 말고 또 한 사람이 있는데 바로 벤.
데비와 라이벌이다.
늘 두 사람은 '내 점수가 더 높네, 니 점수가 더 높네.' 공부로 투닥투닥한다.
벤 네 집은 매우 부자다.
그래서 돈을 보고 달려든 여자가 있어, 여자 친구는 있지만 굉장히 외로운 아이다.
주변에 친구가 없다.
데비의 절친들.
올해는 기필코 남자 친구를 만들고자 으쌰 으쌰 하는, 서로 죽고 못 사는 친구들이다.
서로를 지지하고 응원하지만,
보다 보면 친구들이 보살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데비의 가족.
엄마와 친척 언니.
엄마는, 미국인들 눈에 전형적인 아시안 엄마(?).
딸을 통제하고 간섭한다.
공부가 최우선이며, 남자 친구는 절대 안 된다.
파티는 멍청한 미국 애들이나 하는 거고, 친구 집 놀러 갈 땐 인도식으로 꼭 선물을 쥐어 보내는.
친척 언니.
얼굴이며 몸매며 완벽하다.
남자 친구가 있지만 숨겨야만 하고 집안에서 점지해준 약혼남을 만나야 할 처지다.
짧게 볼 수 있어서 후딱 봤지만 보면서 내가 이걸 왜 보고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들게 여주인공이 중2병 제대로 걸렸다.
하이틴 미드를 보면 항상 느끼는 게 여주인공 성격을 왜 이렇게 만들어 놓을까?
그래야 갈등이 생기고, 그래야 이야기 전개되고, 좀 더 드라마가 드라마틱하고 다양해지니까?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지만 '그만 볼까.' 싶은 생각이 들게 만들기도 한다.
하지만 이 드라마는 데비를 이해하려고 노력하게 만드는 요소들이 있긴 하다.
1. 데비가 얼마 전 아빠를 잃고 다리를 영영 못 쓰게 될 뻔한 10대 소녀라는 점.
데비 스스로는 괜찮다고 다 잊었다고 하지만 문득문득 감정이 터져 나오는 순간이 있다.
그때 데비는 그 감정을 애써 억눌러 버린다.
그리고 곧 엉뚱한 곳에서 폭발시킨다.
데비는 사람들에게 '아, 휠체어?'로 인식돼 있다.
그 어느때보다 사람들의 눈을 신경 쓰는 10대 소녀가 자신의 휠체어 이미지를 바꾸고 싶은 건 당연하지 않을까.
2. 데비가 인도계 미국인이라는 점.
인종 차별이나 인종간 갈등을 드라마가 부각해 보여주진 않는다.
하지만 데비의 친구들이 히스패닉, 아시안에 한정된다는 것만 봐도 데비의 활동 반경이 넓지 못하다는 걸 알 수 있다.
3. 엄마와의 갈등.
데비는 스스로를 미국인이라고 생각하며 살고 있다.
반면 엄마는 인도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살고 있다.
데비에겐 이해할 수 없지만 따라야 하는 규칙이 많다.
아마 10대 소녀에게 그건 견딜 수 없이 답답했을 거다.
그렇게 데비를 이해하고 드라마를 보려고 노력했다.
안 그랬다면 드라마를 끝까지 보지 못했을 거다.
이 드라마가 여느 하이틴 드라마와 다른 점은 아마 거기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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