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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일이 아니면 쉽게 판단해 버리지: 블랙미러 '공주와 돼지'편

CULTURAL STORY

by 미슈티 2020. 5. 16. 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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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넷플릭스를 끼고 살고 있다.

기묘한 이야기를 완주한 뒤, 뭐를 볼까 고민하다 이름에 끌려 보게 된 드라마, 블랙 미러.

블랙 미러는 여느 미드/영드와 다르다.

에피소드가 연결되지 않고 각 회가 영화처럼 마무리되며 각기 다른 이야기를 진행시킨다.

어쩌면 그래서 좀 덜 찜찜하게, 가뿐한 마음으로 볼 수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내용은 전혀 가뿐하지 않았다. 

굉장히 찜찜했다.

 

블랙미러 시즌1의 1편은 '공주와 돼지' 편이다.

전혀 연관성이 없어 보이는 두 단어. 공주 그리고 돼지.

그렇게 별생각 없이 틀어 보고는 생각이 많아졌다.

 

공주의 울부짖음으로 드라마가 시작된다.

공주가 친구의 결혼식에 갔다 납치가 됐다.

 

'누군가에 의해 납치됐다.

석방 조건은 단 하나.

영국 수상이 오후 4시에 돼지와 성관계를 하는 것.

그리고 그 장면이 전국에 라이브 생중계되는 것.'

 

영국은 이 영상을 보게 된다.

처음에 수상의 반응은 단호하다.

'절대 할 수 없다.

하지만 수잔나 공주는 어떤 방식을 써서라도 안전하게 모셔올 것.'

 

수상은 이 영상이 절대 공개되지 않도록 지시한다.

하지만 이 영상은 유튜브에 올라온 것.

이미 수많은 사람이 보고 난 뒤였다.

 

수상은 언론이 이와 관련된 보도를 내보내지 못하도록 지침을 내린다.

 

하지만 언론은 이 큰 이슈를 놓칠 수 없다 여겨 경쟁적으로 보도한다.

 

이때까지만 해도 여론은 수상에게 호의적이다.

 

'어떻게 수상이 돼지와 성관계하게 한단 말인가.'

 

시간이 촉박했지만 수상은 4시 전까지 공주를 구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여론도 호의적인 만큼 돼지와의 성관계는 수상에게 선택 옵션이 아니었다.

 

'이 사건으로 공주가 죽게 돼도 수상님을 원망하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그런데 수상 몰래 실무진이 페이크 라이브를 준비하고 있었다.

수상 얼굴을 합성한 채 대역을 사용해 수상이 돼지와 성관계하는 것처럼 보이게 만들 작정.

하지만 대역이 촬영을 준비하러 들어가는 장면을 누군가 촬영해 인터넷에 올려 들통이 났다.

 

곧 새로운 영상이 올라왔다.

수잔나 공주의 손가락을 자르는 영상.

 

'꼼수 부릴 생각하지 마라.'

 

 

여론이 급속도로 나빠지기 시작했다.

절대 돼지와 성관계를 하지 않을 거라던 수상도 흔들린다.

주변의 압박에 결국 굴복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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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사람들이 수상과 돼지의 성관계 라이브를 보기 위해 모여들었고,

결국 수상은 돼지와 1시간 넘도록 성관계를 맺는다.

공주는 풀려났다.

 

 

그런데, 공주는 수상이 돼지와 성관계 맺기 30분 전에 이미 풀려난 상태였다.

수상과 돼지의 성관계를 보기 위해 TV 앞에 모여든 사람들 덕분에 눈 신경 안 쓰고 쉽게 공주를 풀어줄 수 있었다.

즉, 수잔나 공주나 풀려난 건 수상과 돼지의 성관계 여부와 전혀 상관이 없었던 것.

 

또한 공주의 손가락도 멀쩡했다.

범인은 본인의 손가락을 잘라 협박했던 것.

 

범인은 예술가였으며, 수상이 돼지와 성관계 라이브를 하는 걸 보고 자살해버린다.

 

실무진은 이 모든 사실을 알게 됐지만 수상에겐 밝히지 않기로 한다.

 

그리고 1년 뒤, 수상은 여전히 수상 자리를 지키고 있었고 작년에 비해 지지율이 3% 올랐다.

하지만 부인과의 관계는 매우 소원해졌다.

 

 

이 드라마를 보고 멍했다.

도대체 무슨 말을 하고 싶었던 걸까.

그냥 가장 먼저 든 생각은 '내 일이 아니면 말하기가 참 쉽지.'

 

결국 수상은 본인의 판단에 의해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그냥 사람들의 의견에 휩쓸려 행동하게 강요된 거다.

 

처음에 사람들은 수상 입장 = 내 입장에서 생각했다.

어떻게 돼지랑 카메라 앞에서 성관계를 해?

절대 안 되지.

 

그런데 수잔나 공주의 손가락이 잘렸다는 사실이 밝혀지자 수상 일은 그냥 남의 일이 돼버렸다.

어떻게 사람을 죽여, 일단 사람을 살려야지.

돼지랑 성관계해야지, 뭐.

 

특히 미디어를 통해 비춰지는 누군가의 일이라면 그게 더 쉽다.

너무 쉽게 판단해 버린다.

그리곤 강요 아닌 강요한다.

벼랑 끝으로 사람을 몰고 간다.

'남의 일'이라고 생각하니까.

 

대중에게 타깃이 된 미디어 속 '누군가'는 그저 가십거리일 뿐.

'돼지와의 성관계라니, 윽, 역해' 하면서도 TV 앞에 삼사오오 모여 카메라 또는 비디오로 녹화 버튼을 누른다.

 

한편으론 수상은 무슨 생각이었을까 궁금하다.

처음엔 '절대' 였다가 어쨌든 여론에 떠밀려 '행동'하게 됐지만 과연 그게 정말 떠밀리기만 한 행동일까?

기본적으로 수상 자리에 대한 미련이 조금은 있지 않았을까.

 

수상은 라이브를 하러 가는 중 걸려온 아내의 전화를 무시해 버린다.

그렇다고 수상을 '자리에 욕심이 있어 돼지와 성관계한 사람'이라고 말하긴 정말 어렵다.

 

이래저래 생각은 많고 씁쓸하고 복잡한데 뭐라 딱 결론지을 수 없었다.

경쟁적으로 자극적이고 이슈 될 사건들에 목매는 언론.

욕하면서도 자극적인 것만 찾아 본질을 보지 못하는 시민들.

수상 몰래 자작극 준비하다 일 커지니 슬그머니 여론 들먹이며 수상에게 희생을 강요하는 실무진.

돌려 까기 드라마, 블랙 미러 공주와 돼지 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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