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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성애가 불법이던 당시 1400만명의 목숨을 살렸지만 화학적 거세를 당한 천재, 앨런 튜링의 생애

CULTURAL STORY

by 미슈티 2023. 5. 27.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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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2년)

앨런 튜링은 1912년 런던 귀족 가문에서 태어났다.

유복한 환경 덕분에 공부에 집중할 수 있었는데

15살 때는 미적분을 배우지 않고도 풀 정도로 천재적인 모습을 나타냈다.

이쯤 앨런 튜링은 크리스토퍼 모르콤이라는 같은 학교 학생과 과학, 수학을 계기로 친해진다.

 

(1930년)

앨런 튜링은 모르콤에게 우정 이상의 감정을 느끼는데

안타깝게도 모르콤은 세균성 질병에 걸려 세상을 떠났다.

앨런 튜링은 첫사랑을 잃은 슬픔을 매우 심하게 앓았는데

당시 모르콤의 어머니와 주고받은 편지가 지금도 남아있다.

 

모르콤을 잃고 앨런 튜링은 더욱더 학문에 정진했는데

덕분에 케임브리지 캉스칼리지에서 최우수 성적으로 졸업할 수 있었으며

 

(1937년)

`튜링의 증명`이라는 현대 컴퓨터의 개념이 담긴 논문을 발표했다.

지금까지도 그가 컴퓨터의 아버지로 불리는 이유가 담긴 논문이라고 할 수 있다.

 

제2차 세계대전의 조짐이 보일 쯤,

앨런 튜링은 영국 정부 산하의 암호해독 기관에서 근무했다.

이 기관은 GC&CS로 불렸으며

나치의 암호를 해독하는 아주 중요한 업무를 담당하는 곳이었다.

 

1939년 당시 앨런 튜링 & 에니그마

(1939년 7월)

나치가 폴란드 침공을 계획한다는 얘기가 돌고 있었고

결국 9월, 독일군이 폴란드를 침공한다.

앨런 튜링을 비롯한 과학자들은 모든 수를 써서라도

독일군의 공격 계획을 알아내야 했는데

당시 독일군은 에니그마라는 암호 기계로 명령을 내렸다.

즉, 에니그마를 해독하는 건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살릴 수 있는 중대한 임무였다.

이때 앨런 튜링이 `반부리스무스`라는 개념으로 돌파구를 찾았고

덕분에 1400만명 이상의 목숨을 살려낼 수 있었다.

 

앨런 튜링은 암호 해독 과정에서 얻은 지식을 바탕으로

최초의 컴퓨터 엔진인 `ACE`를 설계했다.

하지만 국가 안보와 관련된 정보를 보호하는 OSA 때문에

대중들 앞에 이 엔진을 선보일 수 없었고

여기서 회의감을 느끼고 당시 근무하던 연구소를 떠나게 된다.

 

영화 이미테이션 게임 중

(1948년)

이후 새로운 연구실인 맨체스터 빅토리아 대학교에서

`컴퓨팅 기계와 지능`이라는 논문을 발표했는데

현재 아주 핫한 인공지능 서비스 챗GPT의 시작점이 된 논문이라고 할 수 있다.

 

 

 

(1951년)

앨런 튜링은 19살의 청년 아놀드 머레이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

얼마 후 앨런 튜링의 집에 강도가 드는데

그 강도는 머레이의 친구였고

경찰 조사 과정에서 앨런 튜링과 머레이의 관계가 밝혀진다.

당시 영국에서는 동성애는 중대한 불법 행위로 봤기 때문에

사법 당국은 두 사람을 형법에 따라 기소했다.

 

"감옥에 가시겠습니까, 호르몬 치료를 받겠습니까."

 

앨런 튜링은 화학적 거세를 조건으로 집행유예를 선고받는다.

"의심의 여지없이 저는 완전 다른 사람이 되겠죠"

 

*화학적 거세(호르몬 치료)를 받으면 여성처럼 가슴이 나오는 등 신체적 변화가 생긴다.*

 

호르몬 치료를 받으면서도 앨런 튜링은 아무일도 없는 듯 계속 연구를 이어나갔다.

동료들에게 대놓고 사법부를 조롱하는 등 농담을 하기도 했다고 한다.

 

(1954년)

화학적 거세 조치 2년이 지난 1952년 6월 그는 집안에서 쓰러진채 발견된다.

그의 옆에는 한 입 베어 문 사과가 떨어져 있었는데

그 사과는 독극물인 청산가리가 묻은 사과였다.

앨런 튜링이 가장 좋아하던 동화인 `백설공주와 일곱 난쟁이`였다는데

본인의 마지막을 본인이 원하는 대로 마감한 게 아닐까.

 

*애플의 로고가 앨런 튜링의 최후에서 따왔다는 소문이 돌았지만

애플은 공식적으로 이 소문을 부인했다.*

 

하지만 이 역시 사실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그냥 자살로 사건을 빨리 사건을 종결시켜버렸을 뿐

실험 진행 중 사고사한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하는 등 사망에 관해 아직 정확히 밝혀진 건 없다.

 

 

1400명의 삶을 구원했지만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비참한 최후를 맡이하게 된 과학자.

 

(2009년)

그의 죽음 후 많은 시간이 흐르고 잊혀지는 듯 싶던 앨런 튜링은 

성소수자 인권 신장 운동과 함께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영국의 한 프로그래머가

앨런 튜링을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기소했던 것을 사과하라며

영국 정부에 공식 요청했다.

이 요청에 3만명의 시민들의 서명이 더해졌고

한 달만에 영국 정부는 당시 부적절한 기소였음을 인정하는 성명을 발표한다.

 

(2014년)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은 그의 사면을 공식적으로 선언한다.

나아가 영국 정부는 동성애로 처벌받은 모든 남성들에게 소급하며 면책하겠다며

`앨런 튜링법`을 발표한다.

 

 

앨런 튜링의 삶을 조금 더 가까이서 관찰하고 싶다면

영화 `이미테이션 게임`을 추천하고 싶다.

하지만 정확도가 완벽하다고는 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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