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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살인의 추억'과 이춘재 연쇄 살인 사건 비교하며 실제 사건 알아보기

CULTURAL STORY

by 미슈티 2020. 2. 17. 1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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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완전 봉준호의 대한민국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뜨겁다.

코로나도 이기는 그.

나 역시 그 분위기 속에 한 사람이 아닐까 싶다.

봉준호 감독의 영화를 하나씩 다시 보고 있다.

살인의 추억은 화성 연쇄 살인 사건을 모티브로 한 영화다.

화성 연쇄 살인 사건 = 이춘재 연쇄 살인 사건.

이 말은 미제 사건이 해결됐다는 말!

 

이춘재 연쇄 살인 사건은 1986년~1991년에 걸쳐 경기도 화성에서 발생했다.

대한민국 역사상 최악의 연쇄 살인 사건으로 알려졌으며, 얼마 전까지 대한민국 대표 영구 미제 사건이었다.

 

이제 영화와 실제 사건을 비교해 보자.

 

영화와 실제가 일치하는 부분)

 

1.

당시 관할 파출소장들은 정부 눈치를 보느라 연쇄살인사건임을 인정하지 않고 현장을 제대로 보존하지 않았다.
덕분에 사건 해결은 어려웠다.


이후 민심이 들끓고 언론이 사건에 집중하자 그제야 부랴부랴 수사본부를 설치했다.
연인원 205만명의 경찰이 투입되는 등 역사상 가장 많은 인력이 투입된 사건이었다.
하지만 과학 수사가 도입되지 않던 시절이라 수많은 증거에도 오랫동안 미제 사건으로 남았다.

그냥 그 당시 우리나라 상황이 전체적으로 열악하고 체계가 없던지라 우왕좌왕했다.

그걸 영화 속에서 참 한심하면서도 웃기게 잘 표현했다.

 

2.

또한 영화 속에 이춘재의 손에서 살아남은 피해자 1명이 '손이 부드러웠다.'는 증언을 한다. 
실제로 1986년 11월, 이춘재 연쇄살인 사건에 미수 사건이 발생했는데 당시 피해 여성이 손이 부드럽다는 진술을 했다.

 

3.

영화 속에서 유일한 목격자였던 백광호가 기차에 치어 죽는다.

실제로 화성 연쇄 살인 사건에서 고문 후유증으로 자살한 용의자가 있었다.

이를 모티브로 영화에 그려냈다.

 

영화와 실제가 일치하지 않는 부분)

 

1. 
영화 속에서는 범인이 증거를 남기지 않는 치밀한 놈으로 나오지만 실상 담배꽁초, 머리카락 등 증거를 뿌리고 다녔다.
But 위에서 말했던 증거를 분석할 인력, 장비, 노하우 모든 게 부족했던 터라 증거를 활동하지 못했다.

 

2. 


이춘재 연쇄 살인 사건은 총 10차례 사건이 발생했다.
<살인의 추억> 영화 속에서는 비가 오는 날 빨간 옷을 입은 여성을 대상으로 모든 살인이 발생했다고 나온다. 
하지만 실제는 약간 다르다.

10차례 중 비가 오는 날 사건이 발생한 경우는 2건이며, 빨간 옷을 입은 여성이 피해자인 경우도 3건이다.

 

3.
영화를 보며 가장 궁금했던 것이 노래였다.
영화 속 '우울한 편지'가 범인을 특정하는데 큰 도움이 됐는데 과연 사실이었을까.
영화에서 '우울한 편지'가 처음 등장하는 시점은 1986년 10월이다.
하지만 우울한 편지는 1987년 중순에 발매됐으므로 영화 속 이미지에 부합하는 노래를 썼다고 볼 수 있다.

 

4.

영화는 송강호와 한 여학생의 대화로 마무리 된다.

2003년, 범행 현장에 오랜만에 찾아온 송강호를 본 지나가던 여학생이 말한다. 
'어떤 평범한 아저씨도 자기가 예전에 했던 일이 기억나 와봤다고 했다' 
그리고 그 범인을 향한 송강호의 눈빛으로 영화가 마무리된다.

영화 속에서 마지막 송강호의 눈빛이 상당히 기억에 남는다.  


하지만 이춘재는 1994년 이미 청주 처제 살인 사건으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아 복역 중이었다. 
그러니 이는 영화적으로 만든 이야기다. 

이토록 수많은 사람들 가슴 졸이게 하고 잠 못 자게 하고 분노를 유발하던 화성 그놈은, 이제는 잡혔다.

바로 이춘재.

청주 처제 살인 살인 사건으로 교도소에서 수감 중이다.

 

이춘재의 얼굴에 방송을 타고 사람들은 깜짝 놀란다.


7차 사건 이후 당시 버스 기사 안내양의 증언으로 그려진 몽타주가 이춘재와 아주 유사하기 때문이다.

 

당시 한 20대 남성이 정류장이 아닌 곳에서 손을 흔들어 버스를 멈춰 세워 탔으며,
비가 오지 않은 날인데도 남성의 바지 무릎 아래와 신발이 흠뻑 젖어 수상했다고 말했다.

당시 버스기사는 이춘재의 행동이 상당히 무례하고 기분 나빠 인상을 유심히 관찰했다고 한다.

그렇게 2019년 9월 DNA 대조로 유력 용의자 이춘재가 특정됐다.

 

국과수는 경찰로부터 4차 사건 증거물인 옷, 손수건 등 20여 점을 넘겨받았다.

그리고 국립과학수사연구원으로부터 4차 사건의 증거물에서도 이춘재의 DNA가 검출됐다는 통보를 받았다.

 

이후 경찰은 당시 가장 핵심 목격자 2명을 대상으로 최면 조사를 실시했는데 둘 다 이춘재를 범인으로 지목했다.

 

일련의 과정에서 아니라고, 아니라고 발뺌하던 이춘재는 결국 화성 연쇄 살인사건 + a의 범행 일체를 자백했다.

총 14건의 살인과 30여 건의 강간, 강간 미수에 대해 털어놨다.


하지만 2006년 4월 2일부로 공소시효가 만료됐기에 법적인 책임은 묻지 못했다.

 

공소시효 만료 직전, 검찰 내부에서 화성 연쇄살인사건의 피의자를 '성명불상자'로 기소하자는 의견이 있었다.

피의자를 성명불상자로 재판에 넘기면 재판부가 소송 조건을 갖추지 못했다고 판결 내릴 때까지 시간을 벌 수 있을 것이라는 판단이었다.

DNA도 확보된 상태였기 때문에 지금 수사력으로 충분히 잡을 수 있지 않겠냐는 건데,  이런저런 이유로 실제로 실행되진 못했다. 

 

 

참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화성 연쇄살인사건, 아니 이춘재 연쇄살인사건.

무고한 시민을 범인으로 몰아 무려 20년을 감옥에서 썩게 하기도 했다.

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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