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늦게 기생충을 봤다. 끝맛은 참 씁쓸했고 생각이 많아졌다. 봉준호 감독 영화는 보면서 되게 몰입해서 재밌게 보게 되는데 본 후에 머리가 복잡해진다. 그래서 좋다.
영화 중후반부까지도 나는 박사장네의 시선으로 봤던 것 같다.
반지하에 사는 전원 백수인 기택의 가족은 좀 심한 면이 많았다. 가족들끼리 서로 욕설을 쏟아낸다던가, 정말 막장 가족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니 거부감이 들었다. 굳이 저런 가족 설정을 했어야 했나 싶었다.
기우는 친구에게서 과외 아르바이트를 넘겨 받고 재학증명서를 위조한다. 이건 부정이다. 그러나 나는 그보다 자신을 믿고 일자리를 넘겨준 친구가 좋아하는 학생을 아무렇지 않게 탐하는 모습에 더 정이 떨어졌다.
기정은 미술 치료를 대충 인터넷에서 검색해보고 입을 잘 놀려 연교의 마음을 단번에 사로잡는다. 그러곤 뒤에서 '인터넷에서 본 거 얘기하니까 질질 짜더라니까, 미친 년.'하고 씹어 내린다. 그 모습에서 기택의 가족에게 두 번 정이 떨어졌다.
게다가 기택이네 가족은 남의 자리를 빼앗고자 사람을 모함하고 쫓아내는 짓도 서슴지 않는다. 그리곤 누군가 양심의 가책을 느끼자 누가 누굴 걱정하냐며 우리만 생각하라고 딱 자르는데 무서웠다. 사회에서 생존하려면 저 정도의 냉정함이 필요한 걸까.
이렇게 보면 뭐랄까, 박사장네는 단지 성공한 돈 많은 부자일 뿐 정말 선량하고 악의없는 사람들인데 없는데 없이 사는 못된 사람들에게 등처먹히는 것 같이 보였다.
물론 박사장네도 거슬리는 부분은 있다. 절대 이유를 정확하게 말해주지 않는다. 자신들의 격을 떨어뜨릴 것 같은 말들은 입밖으로 꺼내지 않고 그럴 듯한 다른 이유를 찾는다. 그러곤 뒤에서는 격 떨어지는 행동을 하고 격 떨어지는 말들을 너무 아무렇지 않게 해버린다. 마치 자신들이 하면 격이 달라지기라도 한다는 듯.
내 시선은 쫓겨난 가정부가 찾을 것이 있다며 다시 나타나면서 조금씩 달라졌다. 박사장네 집에 모인 기생충들은 서로 그 자리를 놓치지 않기 위해 끝을 보며 싸운다. 여기까지도 난 박사장네 편에 서서 영화를 봤던 것 같다. 도대체 이들은 무슨 잘못이 있단 말인가.
그러다 문득 먹여주고 재워주는 박사장네 무한한 감사를 표하는 전 가정부의 남편의 모습에서 깨달았다. 빚 독촉도 없고 돈을 벌 필요도 없고 알아서 먹이고 재워주는 지하실 생활에 만족하며 이렇게 살게 해준 박사장네 가족에 충성한다. 그리곤 지하실을 벗어나 햇볕과 마주하게 되자 지하실 생활을 망처버린 기택이네 가족을 노리는 무서운 살인범으로 변한다. 화살은 늘 비슷하고 만만한 사람에게 향한다.
지하철 냄새로 사람을 구분하는 박사장의 모습에서도 아차 싶었다. 아들 생일파티에 기택이 가족을 초대하듯 불러 돈 몇 푼 쥐어주고 필요에 따라 이용해먹는 모습에 어쩌면 정확히 알게 됐다. 기택이가 머리에 인디언 모자를 쓰고 왜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푸념하자 정색하며 돈 받았으니 일한다고 생각하라며 조용히 깔아뭉개던 이선균의 표정에서 왜 언젠가 본 기사 내용이 떠오르던지.
극단적으로 그려내긴 했지만, 카스테라 사업을 하다 망하면 순식간에 반지하로 내려가야 하는, 두 번의 기회는 없는 사람들. 반면 자화상을 침팬지처럼 그려도 찬양하며 가능성을 발견해주는 누군가를 쉽게 구할 수 있는 사람들. 가진 자들의 것에서 떨어져 나온 티끌로 치열하게 눈치보며 경쟁해야 되는 대부분의 사람들. 알게 모르게 냄새, 말투, 행동 등으로 구분짓는 이 사회. 가진 자들의 불합리한 요구에 아니라고 얘기할 수 없는 사회. 아무리 부족해도 지금에 감사하며 언감생심 가진 자들의 것을 탐하지 않는 사람들. 지금 이 사회의 모습이 그대로 담겨 있었다.
생각해보면 기택이네 가족은 연교네를 알기 전에는 무척 평화로웠다. 와이파이 하나에도 행복하고 피자 박스를 접어서 번 돈에도 행복해하던 가족이었다. '얻을 것'이 있는 상황에 놓이자 극단으로 가게 된 것이다.
이 모든 비극을 겪은 후 박사장네는 자리를 떠나 이사를 해버리면 그만이다. 하지만 그 자리를 떠날 수 없는 사람들도 있다. 그들은 도망칠 수 없는 그곳에 남아 박사장네가 남긴 흔적에라도 도달하고 싶어하는 꿈을 꾼다. 물론 그 꿈은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다. 기생충을 보며 불편했던 장면들을 곱씹어 생각하면 또 틀린 건 없다. 과장일 순 있겠으나 그게 곧 현실이다. 씁쓸하다.
다 보고 난 후 몇몇 장면들이 곱씹힌다. 연교네 부부의 성생활을 적나라하게 접하게 되면서도 아무 말 할 수 없는 기택이네 가족.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던 날 기택이네는 물에 잡겨 똥물이 범람하는데 그 비를 견디며 말짱한 연교네 아들 장난감 텐트. 비로 인해 피해를 본 이재민들이 강당에 모여 정부에 항의를 하는데 비가 와 미세먼지가 없어 좋다고 하는 연교. 칼부림으로 사람이 죽어나가는 통에 쓰러진 아들만 부여잡고 운전기사를 찾는 연교네. 그 모습을 바라보는 기택이의 표정. '참 영화 같은 설정이다' 라고 얘기하고 싶지만 사실을 그게 우리의 현실이다. 이 현실을 어쩌면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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