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힐링 영화] 러브 인 프로방스(Un ete en Provence, My Summer in Provence, 2014)
러브 인 프로방스(Un ete en Provence, My Summer in Provence, 2014)
빨간 도트무늬 셔츠를 커플룩으로 입은 손주와 할아버지의 모습이 담긴 포스터를 보고 그냥 고민 안 하고 본 영화다. 잔잔한 드라마일 거라는 느낌이 강하게 왔다. 게다가 프랑스 영화. 영상미가 얼마나 예쁠까 기대가 됐다.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다. 따뜻하고 잔잔하다. 아비뇽을 배경으로 한 영화답게 영상미가, 배경 자체가 매우 예쁘다.
아드리안, 레아, 테오는 파리에서 자랐다. 자연보다는 인터넷 연결이 되는가가 더 중요하고 느긋함보다는 주변에 영화관이 있는가가 더 중요한 도시 아이들이다. 그러다 방학 중 엄마의 부재로 할머니를 따라 할아버지가 살고 계신 곳에서 지내게 된다. 하지만 그들은 만남부터 삐걱댄다. 할아버지는 까칠하고 아이들은 솔직하고 굽히는 법이 없다. 사사건건 부딪히며 서로 마음을 굳게 닫은 채 열 줄을 모른다. 그렇지만 청각장애를 가진 테오는 어쩐지 할아버지를 따른다. 할아버지는 태오를 통해 조금씩 그렇게 마음에 문을 연다.
영화 초반 할아버지와 아이들의 기싸움이 어쩐지 남일 같지 않다. 할아버지는 ‘쯧, 요즘 것들은...’하고 혀를 차고, 아이들은 ‘말도 안 통하는 꼰대 할아버지.’ 하며 답답해 한다. 젊은이와 노인들의 기싸움이 어마어마한 사회 분위기를 자주 접해서 그런지 영화 속 주인공들의 날카로운 대립이 어쩐지 낯설지 않았다. 그러다 점차 서로를 받아들이는 모습을 지켜보는 재미도 아주 쏠쏠하다.
영화를 보면서도 나는 할아버지 역을 맡은 사람이 어디서 낯이 익다 했다. 얼른 검색해 보니, 얼마 전에 봤던 영화 <쉐프>에서 유명 쉐프 역을 맡은 아저씨였다. 장 르노. 알고 보니 이 배우 대배우였다. 레옹에도 나왔던데 언젠가 봐야지 봐야지 하면서 아직도 못 봤다. 어쨌든 장 르노라는 배우는 내 머릿속에 확실히 각인이 됐다.
이 영화는 상당히 예쁘고 아기자기한 영화이지만 스토리는 조금 빈약하다. 프랑스 영화를 볼 때마다 느끼지만 스토리 전개가 뭔가 빈 느낌, 뜨는 느낌이 있다. 그럼에도 영화 분위기 자체가 너무 좋아서 그런 거에 굳이 집착하지 않게 된다. 그냥 보면서 눈으로 즐기게 된다. 할아버지 집부터 너무 예쁘다. 집 주변에 할아버지가 키우는 나무들도 너무 예쁘다. 전체적으로 내가 딱 꿈꾸는 삶의 공간 그 자체라서 보는 것만으로도 힐링이 됐다. 살짝 스쳐가는 에이미 와인하우스 앨범에 한 때 하루종일 귀에 꽂고 살던 음악도 다시금 떠올려 봤다. 영화를 보는 순간순간, 나를 대입한 그림을 그려본 영화다.
별 거 아니지만 영화 속에서 관점의 차이를 보여주는 장면이 있었는데 흥미로웠다. 아드리안은 동네 축제에서 그곳에 사는 청년들과 얘기를 한다. 그리고 자랑하듯 파리에 대해 말한다. 얼마나 화려하고 얼마나 살기 좋은 곳인지 당연하게 얘기한다. 하지만 생각도 못한 반응을 받는다. 그 청년들은 파리는 딱 질색이라며, 그런 곳에서는 하루도 살지 못할 거라고 한다. 교통 체증은 얼마나 심하고, 공기 오염은 또 얼마나 심한지 혀를 내두른다.
많은 사람들은 그런 걸 부러워한다고 생각한다. 세련된 거, 멋진 거, 현대적인 그런 거. '인싸'의 척도랄까. 가령 서울은 모든 첨단이 복합된 도시고, 모든 시설이 잘 갖춰졌고, 문화적으로도 가장 혜택 받는 도시고, 가장 크고 가장 힘이 세다고 한다. 뭐, 맞는 말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모든 사람이 서울에 살고 싶어 하는 건 아니다. 모든 기준은 주관적이다.
은연중에 너무 많은 사람들이 한 가지 기준으로 ‘멋지다’와 같은 단어를 정의하는 거 같다. 영화를 관찰자의 입장에서 저 장면을 보면서 ‘그래’ 싶었다. 돈 잘 주고 이름 난 직장 다니는 사람은 성공한 사람이라는 등 동의할 수 없는 기준에 맞춰 살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아등바등 삶에 지치는 건 아닌가 싶었다.
이와 비슷하게 마지막에 엄마와 이혼을 하려는 아빠와 영상 통화를 하는 아드리안의 모습이 어쩐지 짠했다. 다 적응할 거라고, 괜찮아질 거라고 위로하는 아빠에게 아드리안은 시리아 사람들은 폭탄에 익숙해졌고, 아프리카 사람들은 에이즈에 익숙해졌으니 우리라고 이 상황에 적응 못 할 이유는 없으니 적응하라는 거냐며 반문하는데 부모가 되기 위한 막중한 책임감을 새삼 다시 느꼈다.
위에 줄거리에는 얘기를 안 했지만, 아드리안의 엄마는 한 동안 아이들의 할아버지이자 본인의 아빠, 폴(장 르노)과 연락을 끊고 살았다. 그러다 17년 만에 뜬금없이 자신의 아빠 댁으로 아이들을 보게 된 거다. 마지막에 아이들을 엄마 품으로 보내주고 자신의 과 만나게 되는 할아버지의 모습이 나온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다. 이 장면이 왜 이렇게 이유없이 가슴이 저릿했는지 모르겠다. 17년 만에 딸을 본 아빠의 속내를 감히 내가 느꼈다고 하면 오바인가?
배우들, 풍경, 음악, 분위기가 모두 한데 어우러진 가슴이 따뜻한 영화다. 보면서 기분이 좋고, 보고나면 어딘지 마음이 뭉클한 가족 영화다. 정신없이 바쁜 삶에 지쳐 위로가 필요할 때 보면 좋을 잔잔한 힐링 영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