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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서히 사라지느니 불타는 게 낫다'는 명언 및 유서를 남기고 자살한 커트 코베인은 누구?

CULTURAL STORY

by 미슈티 2020. 3. 17. 2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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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가장 핫한 가수, 빌리 아일리시 음악을 듣다가 이런 댓글을 발견했다.

'빌리 아일리시 음악을 들으면 커트 코베인이 생각난다.'

 

사실 빌리 아일리시 음악을 처음 듣고는 상당히 낯선 느낌에 살짝 거부감이 들었다.

약간 속삭이는 듯 노래하는 게, 뭐라는지 모르겠어서 답답하기도 하고,

가사나 뮤비가 살짝 소름 끼치기도 했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런 새로운 것들이 호기심을 자극하기도 했다.

 

그래서 궁금했다.

커트 코베인을 생각나게 하는 빌리 아일리시라...

커트 코베인이 누굴까?

 

 

커트 코베인은 롤링 스톤지 등 권위 있는 평론가들이 손꼽는 대중 음악계에 큰 인상을 남긴 락스타다.

1967년생이며, 1982년부터 1994년까지 활동했다.

"서서히 사라지느니 불타는 게 낫다."와 같은 수많은 명언을 남기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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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트 코베인의 명언:

 

If you ever need anything, please don;t hesitate to ask someone else first

필요한 게 있으면 주저하지 말고 다른 사람에게 물어보라

 

Wanting to be someone else is a waste of the person you are

다른 누군가가 되고자 하는 건 너라는 사람을 버리는 것이다

 

The duty of youth is to challenge corruption

젊은 날의 의무는 부패에 맞서는 것이다

 

It is better to burn out than fade away

서서히 사라지느니 불타는 게 낫다

 

Though the sun is gone, i have a light

비록 태양이 사라져도, 나는 한 줄기 빛을 얻으리라

 

I'd rather be hated for who i am than be loved for who I'm not

내가 아닌 다른 사람으로 사랑받기보다는 나 자체로 미움받는 게 낫다

 

Rather be dead than cool

열정 없이 사느니 죽는 게 낫다

 


어린 시절: 


코베인의 집안 형편은 넉넉하지 않았다.
그의 집안에는 예술계에 종사하는 사람이 많아 커트 코베인도 자연스럽게 노래와 그림에 관심을 갖게 된다.
하지만 가정환경이 그다지 좋지 않았는데, 부모님은 경제적인 문제와 가정 불화로 이혼한다.


커트 코베인은 어린 시절부터 우울증에 시달렸는데, 주변 환경뿐 아니라 유전적 영향이 있는 걸로 보인다.
부모님은 이혼했고 친구는 자살했으며, 직접 지인의 자살을 목격하기도 하는 등 주변 환경도 별로 안 좋았다.
게다가 집안 자체에 정신 질환을 겪는 사람이 많았다.

실제로 친척 중 2명이 자살했다.


부모님의 이혼 후 아버지와 살게 됐는데 아버지는 곧 다른 여자와 재혼을 해 아이를 낳았다.

이로 인해 커트 코베인은 방황했으며, 가족들과 관계가 좋지 않았다.
이때부터 대마초, 술 등에 손을 대기 시작한다.

 

너바나 결성:


고등학교 졸업을 2주 남기고 학점이 부족하자 학교를 자퇴한다. 
집에서도 쫓겨나 노숙 생활을 하며 음악을 했다. 
이후 청소부 일을 하면서 친구들과 함께 너바나를 결성한다. 

 

결성 이후:


초기에 돈이 없어 여자 친구의 집에서 얹혀살았는데, 곧 경제적 능력이 없다는 이유로 차였다.


커트 코베인은 20달러를 들여 데모 테이프를 녹음했고, 이 데모 테이프가 나름 주목을 끄는 데 성공한다.
그러던 중 당시 유망한 밴드를 영입하던 음반사 '서브 팝'에 눈에 띄었고, 계약 과정을 거쳐 1989년 첫 음반을 발매한다.

첫 음반은 그럭저럭 괜찮은 성적을 낸다.

커트 코베인은 '서브 팝'으로부터 합당한, 괜찮은 대접을 받지 못한다고 생각해 'DGC'와 계약한다.
이후 1991년 2집 Nevermind를 발표하고 리드 싱글 Smells like teen spirit로 초대박을 친다.
이 앨범은 1년 이상 차트에 머물렀으며 전 세계적으로 약 3000만 장이 팔렸다.

하지만 엄청난 성공 이후 커트 코베인은 마약에 중독됐다.
사실 커트 코베인은 Nevermind 앨범이 너무 상업적이고 소리가 깔끔해 너바나와 색깔이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는데,
이 앨범이 크게 성공한 것이 불만이었던 데다가,

원히트 원더 밴드로 노래 하나만 남기고 밴드가 사라질까 봐 불안해하기도 했다고 한다.

 

1992년 커트 코베인은 코트니 러브와 결혼하고 딸 프랜시스 코베인을 낳는다.
많은 사람들이 두 사람의 만남을 반대했었다.
두 사람은 각종 사건사고에 연루되는 일이 잦았고 둘 다 마약 중독자였기 때문이다.
실제로 결혼 후 코트니 러브는 임신한 상태에서 헤로인을 한 게 발각이 됐다.
이로 인해 부부는 법정까지 불려 나갔다.

 

 

 

1994년 커트 코베인의 헤로인 중독은 심각한 상태였고 유럽 투어 중 의식을 잃고 쓰러진 채 발견됐다.
다량의 수면제를 샴페인과 섞어 마신 걸로 진단 결과가 드러났다.
이후 일정을 모두 취소하고 커트 코베인은 자기 방문을 잠근 뒤 자살을 시도한다.
신고를 받은 경찰이 출동해 그가 든 총을 압류하며 사건은 마무리됐다.
주변인들의 설득으로 커트 코베인은 재활원에 들어가지만 재활원에 들어간 다음날 재활원에서 도망간다.

 


4월 8일, 코베인의 자택에 경보장치를 설치하러 온 전기공이 커트 코베인의 시신을 발견해 신고했다.
유서가 발견됐으며, 부검 결과 커트 코베인은 총으로 자신의 머리를 쏴 자살한 걸로 결론지었다.

 

대략적인 유서의 내용:

 

"내가 생각할 수 있는 최악의 범죄는 거짓으로 100% 즐기는 듯 행동하며 모두에게 돈을 뜯는 것이다.

..

나는 아마 잃어버린 순간 고마움을 깨닫는 나르시시스트 타입의 사람인가 보다. 내 신경은 너무 예민하다.

...

사랑과 기쁨이 넘치는 프랜시스는 만나는 사람마다 키스를 한다. 그녀에게 위험을 가하는 사람이 없으니까.

그건 나에게 손 쓸 수 없는 정도의 두려움으로 다가온다.

프랜시스가 나처럼 한심하고 자기 파괴적인, 죽음만 생각하는 사람이 된다는 상상만으로도 가슴이 찢어진다.

...

즐거웠다. 매우 좋은 인생이었다. 감사하고 있다.

일곱 살 이후 인간이라고 하는 전부에 증오를 가지게 됐다.

단지 그들이 너무 쉽게 타협하고 공감하고 느끼기 때문이다.

...

과거 몇 년간 편지를 보내주고 걱정해준 모든 이들에게 타서 짓무른, 토할 것 같은 뱃속 깊이에서부터 감사를 표하고 싶다.

...

나는 손 쓸 수 없을 정도로 정상을 벗어난 변덕쟁이 갓난아기다.

이미 나에겐 정열이 없다.

기억해 주길 바란다. 서서히 사라지느니 타버리는 게 낫다는 걸."


특히 커트 코베인의 유서에 적힌 'It's better to burn out than to fade away' 구절은 유명하다.
서서히 사라지느니 불타는 게 낫다.


시애틀 공원에서 커트 코베인의 장례식이 공개 진행됐는데 7000여 명의 인파가 몰렸다.
지금까지도 커트 코베인의 죽음에 관해 각종 음모론이 제기된다.


불우했던 가정환경과 우울증 등 정신적인 문제로 평생 괴로워했던 위대한 뮤지션.
지금까지도 많은 사람들이 그리워하는 위대한 뮤지선.
이런 느낌인데, 커트 코베인의 딸 인터뷰를 보면 참 그렇다.

 


커트 코베인의 딸 프랜시스 코베인은 현재 모델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프랜시스 코베인은 이런 인터뷰를 한 적이 있다.


"자살한 아버지가 미워요. 5살 때 나에게 아버지가 없다는 걸 알았죠.
스스로 내 곁을 떠난 아빠에 대한 원망이 가시질 않아요."


"밴드 너바나 좋아하지 않아요. 아빠의 그림자를 벗어날 수 없다는 걸 15살에 깨달았어요."


"대중은 죽은 뮤지션에 집착해요. 아름답게 추억하고 싶어 하죠. 
인간이 할 수 있는 최악의 방법으로 가정을 버린 사람일지라도요.
팬들 눈엔 그런 사람이 아니었죠. 아빤 음악계에 획을 그은 신성한 존재니까"

 

엄마도 온전치 못한, 참 문제가 많은 사람이기에 혼자 남겨두고 간 원망의 마음이 있는 것 같다.

커트 코베인을 찾아본 후 가장 히트한 곡이라던 Smells like teen spirit을 들어봤다.

와, 91년 곡이면 30년 된 곡이고 10년 전에 유튜브에 올라온 동영상인데,

지금까지도 거의 실시간으로 댓글이 올라오는 걸 보고 깜짝 놀랐다.

정말 대단했던 그룹이자 사람이었구나 싶다.

 

아무리 많은 사람에게 사랑받고 존경받아도,

개인 스스로 갖고 있는 공허함이 해결되지 않으면 항상 불행하다고 느끼게 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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